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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질 노래 가운데 전 세계적으로
가장 유명한 노래가 아리 바호주(Ary Barroso)가 작곡한 아꽈렐라 두 브라질(Aquarela
do Brasil)이라면 브라질 음악가 가운데 전 세계적으로 가장 많이 알려진
가수이자 작곡가는 바로 톰 조빙일 것이다. 그가 작곡한 노래들 가운데
7곡이 100만장 이상의 판매를 기록했으며 그 가운데 보사노바의 명곡이라고
알려진 "이빠네마의 소녀 Garota de Ipanema(영문으로는 The Girl
from Ipanema)"는 지금까지 전 세계에 400만장이 팔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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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4년 조빙이 사망했을 때 그의
친구 중 한명이었던 미국의 프랭크 시나트라는 조빙에 대해 그와 "밤새
대화하며 깊은 생각을 나눴던 시간들 만큼이나 그와 함께 했던 음악적
경험들은 충분히 가치가 있었을 뿐만 아니라 매우 창조적이었다"라고
술회한 바 있다. 또한 시나트라는 그의 사망에 대해 "전 세계는
가장 재능있는 음악가 중 한명을 잃었으며 내 개인적으로는 큰 친구
한명을 잃은 것"이라고 애도를 표했다. 이처럼 세계적인 음악가로 이름을
날렸던 톰 조빙의 본명은 안또니우 까를루스 브라질레이루 지 알메이다
조빙(Antônio Carlos Brasileiro de Almeida Jobim)으로 1927년,
세계 3대 미항 가운데 하나인 히우 지 자네이루(RIo
de Janeiro)에서 태어났다. 그의 가족은 띠주까(Tijuca)구(區)에
살았으나 곧 조빙의 음악적 영감의 산실이 된 이빠네마(Ipanema)로
옮겼다.
14세가 되던 무렵 그는 뮤지컬에
종사하던 삼촌들의 영향을 받아 피아노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으며 이를
눈치챈 그의 의붓아버지가 한스 조아슁 쾰로이터(Hans Joachim Koelreuter)에게로
데려가 피아노 공부를 시작하도록 해주었다. 이 스승은 어린 조빙에게 고전음악의
대위법과 하모니의 개념을 깨우쳐 주었으며 그 결과 조빙은 자신의 음악작품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드뷔시(Debussy)에 심취하게 된다. 그 뒤엔 루씨아
브랑꾸(Lúcia Branco)에게서 피아노 공부를, 또마스 떼랑(Tómas
Téran)에게서는 기타를 배우게 되었다. 한때 그는 건축가가 될
꿈을 안고 건축사무실에서도 일하기도 하였으나 자신의 재능이 음악에
있음을 알고 중도에 포기하고 말았다.
1949년, 조빙은 청년기때부터 연인관계에
있던 그의 첫 번째 부인 떼레자(Tereza)와 결혼을 하였으며 꼬빠까바나(Copacabana)해변의
야간 업소에서 피아니스트로 일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3년 뒤에는 꼰찌넨따우(Continental)라는
녹음회사에서 일을 시작하며 녹음을 위한 편곡일을 맡았다. 그 결과
1953년 그의 첫 작품이 선을 보이게 된다. 작품명은 Incerteza(잉쎄르떼자
- 불확실이라는 듯)로 뉴톤 멩동사(Newton Mendonça)와 공동으로
만들어졌으며 마우리씨 모우라(Mauricy Moura)의 목소리로 녹음되었다.
또 이듬해 1954년, 빌리 블랑꾸(Billy Blanco)와 함께 작곡한 Teresa
da praia(해변의 떼레자라는 뜻)가, 당시에 큰 인기를 모으던 딕 파니(Dick
Farney)와 루씨우 아우비스(Lúcio Álves)의 목소리로
녹음되어 대 성공을 거두기에 이른다. 그 직후 그는 다시 빌리
블랑꾸와 Sinfonia do Rio de Janeiro라는 곡을 만들어, 꼰찌넨따우사에서
10인치 LP판으로 녹음, 찬사를 받았다.
그리하여 1956년경 부터는 빌리
블랑꼬(Billy Blanco), 돌로리스 두랑(Dollores Duran), 뉴톤 멘동사(Newton
Mendonça)등과 함께 본격적인 작곡 활동을 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그에게 정작 중요한 변화는 당대 유명한 브라질 시인이었던 비니씨우스
지 모라이스(Vinícius de Moraes)를 만나면서부터였다. 조빙은
언젠가 "비니씨우스와 함께 하루에 3곡을 만들기도 했다"고
술회한 적이 있을 정도로 두 사람의 친분은 두텁기 이를 데 없었으며
둘은 완벽한 호흡을 자랑하였다. 그 결과 이들은 "Se Todos fossem
iguais a você", "Amor em Paz", "Chega
de Saudade", "Águas de Beber", 그리고 "Garota
de Ipanema" 등 보사노바의 명곡들을 만들어 내었다. 특히 비니씨우스
지 모라이스와 함께 만든 "아 펠리시다지 (A Felicidade - 행복이란
뜻)"가, 프랑스의 칸느 영화제에서 황금 종려상을 수상하고 헐리우드에서
오스카의 최고외국영화상을 수상한, 마르셀 까뮈 감독의 영화 "Orfeu
do Carnaval"(카니발의 올페라는 뜻)의 배경음악으로 삽입되면서
큰 주목을 받기에 이르렀다. 그리고 이듬해 1958년, 주엉 질베르뚜(João
Gilberto)의 기타 연주와 오케스트라가 동원된 엘리제찌 까르도주(Elisete
Cardoso)의 Canção do amor demais라는 LP판에 비니씨우스
지 모라이스와 함께 만든 여러 곡이 선보였는데 그 가운데 하나가 브라질
음악사에 새로운 획을 그은 "쉐가 지 사우다지 - Chega de Saudade(그리움은
이제 그만이라는 뜻)"가 포함되어 있었다. 이 LP는 멜로디와 가사의
창작성 그리고 오케스트라의 연주 등 모든 면에서 향후 붐을 이룰
보사노바의 특징을 고루 갖춘 이정표로 간주되고 있다. 그 직후 "Chega
de Saudade"는 주엉 질베르뚜(João Gilberto)에 의해 78rpm으로
다시 녹음되었으며 이때부터 보사노바는 브라질 전역을 휩쓸 게 되었다.
1960년대에 들어서면서 톰 조빙은
국제무대로 활동영역을 넓히기 시작한다. 우선 1962년, 미국의 Audio
Fidelity사의 초청과 브라질 외무성의 후원하에 미국의 카네기
홀에서의 공연을 가졌으며 이어 미국의 배우겸 가수인 프랭크 시나트라(Frank
Sinatra)의 초청으로 로스엔젤레스에서 자신의 곡들을 녹음하면서 세계무대에
본격적으로 알려지게 되었다. 그는 1963년 처음으로 솔로 음반인 The
composer of Desafinado Plays을 내고 Corcovado Music이라는 이름의
음반출판사도 열어 본격적으로 미국에서의 활동을 시작했다. 하지만
아이러닉하게도 그의 조국인 브라질에서는 그가 '미국음악'을 한다든가
아니면 미국 시장에 몸을 팔았다는 비난이 크게 일었으며 그것을 입증하기라도
하듯 그의 음반은 미국을 비롯한 각 국에서 상당한 판매를 기록한 반면
브라질 국내에서는 아주 저조한 판매실적을 나타내었다.
한편 1970년대에 들어서면서 조빙은
아마존 밀림의 파괴와 대도시에서의 부동산 투기 등을 보며 자연보호에
관심을 갖게되면서 "Matita Perê", "Urubu",
"Passarim"과 같은 곡을 만들기도 했다.
그러다가 1980년대에에 들어서는
브라질 국민들로부터도 점차 사랑을 받기시작하면서 국내 활동도 강화하였으며
그 와중에 두 번째 부인인 아나 롱뜨라(Ana Lontra)를 만나게 된다.
두 번째 부인과는 아들인 주엉 프랑시스꾸(João Francisco, 18세이던1997년
7월 교통사고로 사망)와 딸인 마리아 루이자(Maria Luísa)를
두었다. 첫 번째 부인과는 딸인 엘리자베찌(Elizabeth)와 아들인 빠울링뉴(Paulinho,
피아니스트이자 현재 역시 피아니스트로 활약하고 있는 다니에우 조빙-Daniel
Jobim의 아버지)를 두었었다.
그리고 노년기에 접어들었던 1992년
그는 그해 브라질 카니발에서 망게이라(Mangueira)삼바스쿨의 주 테마로
등장하며 브라질 국민의 사랑을 한 몸에 받았다. 그러나 1994년
초, 방광암 선고를 받고 미국의 뉴욕에서 종양 제거를 위한 수술과 치료를
받았지만 끝내 이기지 못하고 그해 12월 8일 사망하고 말았다.
Tom Jobim의 앨범과 작품(연도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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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이후는 Tom Jobim 사망이후 기존의 작품을 다시 재 편집한 것들이므로
여기에 올리지 않았습니다. 아울러 잘못되었거나 빠진 앨범이 있으면
메일로 연락바랍니다.
1956 - Orfeu da
Conceição 1957 - O Pequeno
Príncipe 1958 - Canção do Amor
Demais - Elizete Cardoso 1959 - Amor de gente moça - Silvia
Telles 1959 - Chega de Saudade -
João Gilberto 1959 - Por tôda a
minha vida - Lenita Bruno 1960 - Brasília - Sinfonia da
Alvorada 1960 - O Amor, o
Sorriso e a Flor - João Gilberto 1961 - João Gilberto - João Gilberto 1963 - Getz/Gilberto - Stan Getz, João Gilberto e
Antonio Carlos Jobim 1963 - The Composer of Desafinado
Plays 1964 - The Wonderful World of
Antonio Carlos Jobim 1965 - A
Certain Mr. Jobim 1965 - Caymmi
Visita Tom 1967 - Francis Albert
Sinatra & Antonio Carlos Jobim - Frank Sinatra/Antonio Carlos
Jobim 1967 - Wave 1970 - Stone Flower 1970 - Tide 1971 - Sinatra & Company - Frank Sinatra/Antonio
Carlos Jobim 1972 - Disco de
bolso - O Tom de Tom Jobim e o tal de João Bosco 1973 - Matita Perê 1974 - Elis & Tom 1975 - Urubu 1977 - Miucha & Antonio Carlos
Jobim - vol. I 1977 - Tom, Vinicius, Toquinho, Miucha -
gravado ao vivo no Canecão, Rio de Janeiro 1979 - Miucha & Tom Jobim - vol.
II 1980 - Terra
Brasilis 1981 - Edu &
Tom 1983 - Gabriela 1985 - O Tempo e o Vento 1987 - Passarim 1987 - Tom Jobim Inédito 1994 - Antonio Brasileiro 1995 - Antonio Carlos Jobim:
Composer 2000 - Tom Canta
Vinícius
(Source:
O Estado de São Paulo 특집.
Enciclopédia
d Música Brasileira - 브라질 음악 백과사전, São Paulo,
Publifolha,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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